저는 지난 8월 1일부터 11일까지 서유럽의 성모님 발현지 중심으로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교구 아버지학교 봉사자들이 오래 전부터 "언제 한 번 성지순례 함께 가자"고 벼르고 조금씩 비용을 준비해 왔는데, 이번 휴가기간을 이용해 결행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미 다녀오신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저는 이곳이 처음이어서 모든 것이 새로웠고,
그래서 몇 장의 사진이나마 교우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내려 곧바로 버스 편으로 벨기에 반뇌로 이동하였습니다.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젖소 농가들이 이곳이 낙농업국가임을 실감케 해주었습니다.)
▲ 멋진 피정의 집에서 첫날밤을 묵었습니다. 피정의 집에는 남여 어르신(70~80세 어르신)들이 순례자들을 위해 숙식봉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 1933년 1월 15일부터 3월 2일 사이에 성모마리아께서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로 반뇌에 사는 마리에뜨(12세)에게 8번을 나타나셨답니다.(마리에뜨는 이후 수녀로 일생을 봉헌)
▲ 반뇌 성모발현 성당과 마리에뜨의 생가입니다.
▲ 이튿날 반뇌를 떠나 프랑스 파리로 이동하는데, 고속도로에 웬 오토바이가?
이쪽 동네는 250cc 이상이면 오토바이도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다는군요.(파리에는 오토바이 택시도 성업중이랍니다. 워낙 도로 정체가 심하기 때문에..)
▲ 에펠탑 앞에서 기념사진 찰칵!(소매치기 조심하라고 가이드한테 어지간히 주의를 받았어요. )
▲ 유람선을 타고 세느강을 둘러보는데, 박물관이며 성당 등 끝없이 펼쳐진 유적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강에도 유람선이 있지만, 우리 나라는 너무 볼게 없는데..ㅠ
▲ (셋째날) 기적의 메달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파리 시내 한복판에 성 빈첸시오 바오로에 의해 세워진 자비수녀회 소성당입니다.
▲ 성모마리아께서 까트린느 라부레 수녀에게 발현하셔서 인간 모두에게 내리는 은총과 구원의 상징인 기적의 메달을 준 곳이랍니다.
▲ 노트르담 대성당입니다. 1245년 완공된 이 성당은 중세 고딕식 건축의 걸작으로 꼽힙니다.(잠시 머무는 동안데도 관광객 혹은 순례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 개선문입니다. 1806년 나폴레옹 1세가 휘하 군대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계획하여 30년 걸려서 완성된 것이랍니다.
▲ 파리에서 떼제베를 타고 6시간 쯤 걸려서 도착한 곳이 그 유명한 루르드
얼마 전 물난리가 나서 시내가 큰 수해를 입었더군요. 유럽은 요즘 이상 저온 현상으로 포도농가들이 울상이랍니다.
▲ 연약한 양치기 소녀 벨라뎃다(12세)에게 1858년 2월부터 7월까지 18회에 걸쳐 발현하신 곳입니다.
(마사비엘 동굴앞에서 미사) 각국 순례자들이 미사를 드리려면 미리 신청하여 새벽부터 30분씩 할당을 받습니다.
▲ 루르드 성모발현 기념 성당 십자가탑(저 멀리 성벽과 옛 감방 '까쇼'가 보입니다.)
▲ 성모님 발현 기념 성당 외부
▲ 루르드에 마련된 십자가의 길 1처는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면서 기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 마지막 15처는 돌무덤이 있었는데, 이곳에 걸려진 순례자들의 묵주가 인상적이었습니다.
▲ 루르드 성모발현 기념성당 전경
▲ 세계 각국에서 하루에도 수만명씩 순례자들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불치병이나 난치병이 낫는 기적이 오늘날에도 계속 일어나고 있어서 병자들의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진심으로 기도하고 이 물을 마시면 병이 낫는다고 합니다.
저도 이곳에서 기적수 한 통을 담아 왔습니다. 주임신부님을 통해 (봉성체 때?)환자 교우님들께 전달해 드리고 싶습니다.
▲ 병자들을 위한 성체거동행렬 - 동시에 3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지하 강당에는 매일 오후 3시에 성체강복식이 열립니다.
▲ 밤 9시에는 촛불행렬이 진행되는데, 동굴앞에서 촛불을 들고 묵주의 기도를 끝내고 성체거동과 같은 코스로 진행됩니다.루르드 순례에서 아름답고 감격적인 순례행사 중 하나입니다.
▲ 촛불 행렬(루르드에서는 매일 이처럼 수만명이 모여 묵주의 기도와 촛불행렬을 거행하고 있답니다.)
▲ 촛불 행렬(촛불의 흐름을 사진으로 찍어내지 못해 아쉽습니다. 아직 기술이 부족하여..)
▲ 촛불 행렬
▲ 촛불 행렬 - 루르드에서 이틀밤을 묵으며 기도와 미사를 하였습니다. 온 몸을 물에 담그는 침수 체험도 하였습니다.
▲ 다음날 스페인으로 이동하여 로욜라 지역에 위치한 성 이냐시오 생가를 둘러보고 기념 성당에서 미사를 하였습니다.
▲ 스페인 부르고스 대성당 안에 있는 성모님. 아기예수님께 젖을 드러내 놓고 먹이시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스페인 성모님 상은 이처럼 대부분 수유장면이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 부르고스 대성당 안의 파이프 오르간
▲ 부르고스 대성당-이게 성가대석입니다.
▲ 부르고스 대성당 내부
▲ 부르고스 대성당 내부-아기자기한 조각품들을 보며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 부르고스 대성당 천장
▲ 부르고스 대성당 천장(이거 그림이 아닙니다. 모두 조각품들이죠.)
▲ 성경을 옮긴 학자인데, 이름을 까먹었네요.
▲ 스페인 서부 산티아고로 이동하였습니다. 사진은 산티아고 대성당. 산티아고는 성 야고버란 뜻이며, 예수님의 12제자 중 야고버 사도가 이곳까지 전도여행을 온 곳으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홀로 1~2달 동안 "까미오(길, 순례)"를 하고 이곳 대성당 광장에 모여듭니다.
저도 나중에 이 길을 걸어볼 생각입니다. 같이 가실 분?
▲ 싼티아고 거리에서 성모마리아 상을 흉내내어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여인
▲ 간디 모습으로 퍼포먼스를 하고 있습니다(가운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1유로 동전을 주면 사탕이나 꽃잎을 선물로 줍니다.
▲ (7일째 되는 날) 포르투갈 파티마로 이동하였습니다. 성당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어린 목동들 루치아(10세), 프란치스코(9세), 히야친타(7세)에게 6번에 걸쳐 발현하셔서 세계평화와 죄인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라는 메시지들을 남기셨답니다.
▲ 파티마 대성당 광장(30만명을 수용할 수 있답니다.)
▲ 파티마 대성당 앞에 또 하나의 현대식 성당이 있었습니다.
▲ 파티마 대성당 광장에서 바라본 조각품. 빛에 반사된 조각상의 그림자가 이색적이었습니다.
▲ 성모님 발현 경당(성모님이 발현하신 그 장소에 조그마한 경당을 세웠다죠.)
▲ 이곳에서도 매일 밤 9시에 전세계에서 몰려든 순례객들이 함께 묵주의 기도와 촛불행렬을 합니다.
▲ 파티마 촛불 행렬
▲ 파티마 대성당 야경
▲ 8/8(목) 스페인 중서부 살라망카로 이동, 대성당과 살라망카 대학교 방문.
사진은 마요르 광장(17세기에서 19세기 전반까지 이 광장은 각종 공연장, 마녀재판과 사형집행장, 왕가의 결혼행사장, 투우장 등 다양하고 이채로운 행사의 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 8/9(금) 스페인의 고도 톨레도 시
톨레도 대성당 안에 있는 성모님. 이렇게 밝은 표정으로 아기예수님과 다정한 모습을 하고 계신 성모님은 처음 보았습니다.
▲ 톨레도 대성당 천장의 조각품들
▲ 톨레도 성당안에 전시된 그림 '베드로의 눈물'(엘 그레꼬 작).
어딜 가나 베드로 사도는 2개의 열쇠를 쥐고 있어서 저분이 베드로라는 걸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쥐고 있는 열쇠 중 하나는 천국의 열쇠이고 또 하나는 무슨 열쇠인지 아시나요?
(알아 맞춰 보세요..제게 답을 말씀해 주시는 분께는 루르드에서 사온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사진이 새겨진 15유로짜리 묵주를 선물로 드립니다. 1유로=1,500원)
*기한 : 2013.8.15(성모승천대축일) 교중미사 전까지
*방법 : 휴대폰 문자(010-8805-7557) 또는 이메일(yhs4u@hanmail.net)
*상품(묵주) 전달 방법 : 사무실 성물판매소에 맡김-찾아가시면 됨
▲ 저는 8일째 되던 날 살라망카 대성당을 순례하다 발을 헛디뎌 발목을 다쳐, 아빌라의 대데레사 성녀의 심장과 팔이 보관되어 있는 성당과 수도원을 방문하지 못하였습니다.
▲ 스페인의 고도 똘레도 시가지 모습
▲ 똘레도 시를 배경으로 찰칵!
무척 인상 깊은 성지순례였습니다.
비행기 타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12시간 꼬박 걸림) 다시 가라면 선뜻 내키지는 않지만, 유럽의 문화와 역사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고, 떠나기 전 많은 분들의 기도를 모아 성지에서 열심히 기도한 것은 제게는 매우 뜻 깊은 일이었습니다.
안식년 중인 신부님 한 분을 모시고 가서 매일미사를 하면서 하느님과 깊은 만남의 시간을 가진 것도 의미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