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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이 세 번 읽은 책”[퍼옴]

 

출   처 : 시사IN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1140)

글쓴이 : 장정일(소설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한하기 직전 어느 신문은 지난해 10종에 불과했던 프란치스코 관련 서적이 올해 현재까지 39종이나 나왔다라면서, 올해 1월과 6월 사이에 300~ 400권을 오르내리던 판매량이 7월부터 2800권 넘게 치솟기 시작했다고 알렸다. 교황의 한국 방문이 사회 전체에 끼친 영향은 향후 자세한 평가가 따르겠지만, 저 보도만 보자면 교황에게 열렬한 환호와 기대를 표명한 사람들 가운데 출판계와 서점 업계가 빠질 수 없다. 각종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은 교황 관련 서적을 위한 매대를 따로 만들었다. 하지만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이 벌인 특별기획전은 교황 관련 서적을 내지 않은 출판사에까지 교황 방문 효과를 물방울 떨어트리듯 하려는 착상은 없었다.

 

교황은 자신이 쓴 글이나 대담을 통해 자신의 문화적 취향을 상세히 드러냈다. 좋아하는 음악·영화·그림은 물론이고, 한때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기도 했던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작품과 작가를 열정적으로 예찬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인간의 창의성을 보여주는 징표이자, 진리의 표현 형태가 여러 가지일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며, 삶과 체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사회의 결핍된 열망을 드러내고 공동체를 결속시켜주기 때문이다.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이 좀 더 차근하게 기획했더라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쓰거나 교황에 대해서 쓴 책만이 아닌, 그가 읽었던 책들로 두 번째 구역(매대)을 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르반테스가 고전에 내린 정의를 자기 말처럼 즐겨 인용한다. “어린이들은 그것을 손안에 가지고 있고, 젊은이들은 그것을 읽으며, 어른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노인들은 그것을 두고 찬양한다.” 다시 말해 고전이란, 세련된 전문가들을 위한 특별한 작품이 아니라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자기 것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교황은 이런 작품으로 단테의 <신곡>, 횔덜린의 <히페리온>을 꼽았으며, 도스토옙스키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약혼자들>의 서두를 외우도록 가르치셨어요

 

고전이 반드시 오래된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은, 교황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애독자라는 것으로 증명된다. 또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로 가브리엘 악셀 감독의 <바베트의 만찬>을 들기도 했으니 이자크 디네센이 쓴 동명의 원작 소설도 분명히 좋아할 것이다. 교황은 이 외에도 많은 작가와 철학자를 언급하는데, 아르헨티나의 걸출한 소설가 레오폴도 마레찰이나 일부 비평가들이 천주교의 프루스트라고 부르는 요셉 말레그처럼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현대 작가의 작품도 꽤 있다. 다행히 예수회 사제이면서 교황이 특별히 좋아하는 두 명의 현대 프랑스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인 미셸 드세르토의 경우 <루의 마귀들림-근대 초 악마 사건과 타자의 형상들>(문학동네, 2013)을 시작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그의 책이 속간될 예정이다.

 

교황의 애서 목록 가운데 가장 이채롭고 특별난 것은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약혼자들>(문학과지성사, 2004)이다. 그는 교황이 된 뒤에 이루어진 어느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약혼자들>이라는 책을 세 번 읽었는데 또 읽으려고 지금 책상에 두고 있습니다. 만초니는 저에게 많은 것을 주었지요. 우리 할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 이 책의 서두를 외우도록 가르치셨어요.”

 

이지영 그림

1821~1842년 만초니가 세 번이나 고쳐 쓴 <약혼자들>은 토스카나 방언을 중심으로 이탈리아 표준어가 확립되는 데 공헌했으며, 이탈리아 통일운동인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이탈리아의 민족의식을 일깨운 이념·문학 운동)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 작품이 나왔을 때 이탈리아 반도는 여러 공국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밀라노가 주도인 롬바르디아 지역 전체는 오스트리아 지배 아래 있었다. 작가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 무대는 그대로 살린 채 시간 설정만 스페인 치하의 17세기로 옮겼다.

 

밀라노 근교의 레코에 사는 렌초와 루치아는 결혼식 날 아침, 주례를 보기로 한 마을의 신부 돈 압본디오로부터 주례를 볼 수 없다는 통고를 받는다. 스페인 귀족이자 이 지역의 영주인 돈 로드리고가 루치아에게 흑심을 품고 돈 압본디오에게 주례를 서지 말라고 위협했던 것이다. 내막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잠시 돈 로드리고의 마수를 피하기로 하고, 렌초는 밀라노로 가고 루치아는 몬차의 수녀원에 숨는다. 밀라노에 도착한 렌초는 도시에서 일어난 식량 폭동에 휘말려 누명을 쓴 수배자가 되고, 몬차 수녀원에 숨었던 루치아는 돈 로드리고의 사주를 받은 산적에게 납치된다. 평범한 계급의 연인이 세도가(勢道家)의 방해로 혼사 장애를 겪는 이처럼 세속적인 이야기의 처음과 끝에 정의를 위해 고통받는 것을 회피한 마을 신부가 있다.

 

편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과 존경받는 강력한 계급에 몸을 맡기는 것이 그가 성직자를 선택하게 된 충분한 이유인 듯했다. 돈 압본디오는 자신의 몸을 바침으로써, 그리고 다소 위험을 무릅씀으로써 얻어지는 그런 이익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삶의 방식은 주로 모든 대립을 회피하는 것이었고, 피할 수 없는 대립에는 굴복하는 것이었다. 예외적인 경우, 두 적수 사이에서 편을 들어야 했을 때, 그는 더 힘센 편을 들었지만, 늘 그 뒤쪽에 서 있었는데, 다른 편에게 자신은 자발적으로 그의 적이 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본 압본디오는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저 소심하고 나약한 인간 군상에 지나지 않는다. 대신 그와 정반대 편에 있는 페데리고 보로메오 추기경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루치아를 납치한 산적과 맨몸으로 만난다. 이 장면은 당신이 무척 좋아하는 사람,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러 가는데 유리 상자 안에 들어앉아 그들을 찾아갑니까?”라며 매번 방탄차를 물리쳤던 프란치스코 교황을 떠올려준다. 교황의 표현을 따라 하면, 그것은 절반의 소통이다. 이 외에도 작중 추기경은 약자에게 연민을 쏟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많이 닮았다.

 

이 책이 교황의 수신 교과서였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분명 교황은 그의 덕성을 예수회와 프란치스코 성자의 가르침을 통해 닦았을 테고, <약혼자들>은 수신 교과서보다 더 뛰어난 소설 중의 소설이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 뛰어난 고전들로 교황 방문 효과를 연장하지 못했다는 것. 이 불만은 영혼 없는 자본주의를 일관되게 비판해왔던 교황의 노력을 따라 서점의 매대에 세 번째 구역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교황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해방신학이나 종교와 정치를 주제로 한 네 번째 구역이 만들어지지 못한 아쉬움에까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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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luciabba

등록일2014-09-01

조회수6,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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