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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게 눈을 감으면...


이웃에게 눈을 감으면 하느님도 볼 수 없습니다
    대놓고 얘기하진 않더라도 명절 같은 때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 사이에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끼리 끝까지 즐겁게 지내려면 ‘정치 얘기는 절대 금지’라는 함구 규칙이 암암리에 가족들을 지배한다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요즘 교회 내에서도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는 견해 차이로 서로 생각이 엇갈리면서 찬성(지지)과 반대(비난)로 나뉘어, 서로가 서로를 몹시 불편해하는 가슴 아픈 모습을 가끔 보게 됩니다. 나와 생각이 ‘다름’은 생각의 ‘차이’일 뿐 ‘틀림’은 아니라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우리의 현실은 별로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 사랑 - 이웃 사랑’ 말씀이 나옵니다. 이 두 가지 계명을 저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이것을 다른 말로 ‘경천’(敬天)이라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애인’(愛人)이라 합니다. 이 ‘경천애인’을 우리 그리스도교의 최고 가르침이라 할 수 있는데, 구약의 모세오경에 기록되어 있는 엄청난 분량의 ‘율법’ 내용을 예수님은 너무나 명쾌하게 두 가지 ‘사랑’으로 요약합니다. 그런데 더 대단한 일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동등한 위치, 똑같은 무게로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하느님 사랑’만 강조하셨다면 하루에 몇 시간씩 하느님과 대화 나누고, ‘하느님에 푹 빠져 살면 된다.’ 라는 식의 ‘혼자만의 신앙’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만약 예수님이 ‘이웃 사랑’만을 중요한 계명으로 내놓으셨다면, 마치 종교가 아니라 박애주의를 실천하는 ‘자선단체’처럼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만큼 이 두 가지 사랑의 계명은 둘 중에 어느 하나라도 빠지거나 어느 한 쪽으로 너무 쏠려서도 안 될, 즉 ‘이웃 사람들을 무시한’ 오로지 하느님 사랑만도 아니고, 또 ‘하느님을 외면한’ 단순한 이웃 사랑만도 아닌, 하느님과 이웃 모두를 향한 ‘두 사랑’의 균형과 조화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임 교황인 베네딕도 16세 교황은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이웃에게 눈을 감으면 하느님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웃 문제, 사회적 문제보다도 오로지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만을 위해서 살고 있는 요즘 세태를 보면서 살짝 생각의 각도를 비틀어 봅니다. 만약에 악마의 유혹이 있다면 우리도 자칫 그런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악마는 아주 열심하고 철저하게 하느님을 향하도록 부추기면서, 그렇게 하느님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에게 ‘다른 곳에 한눈팔아서는 안 되고 세상과 이웃에게 시선을 흩뜨리지 말라고 유혹합니다. 그리고 그럴듯한 이유를 댑니다. ‘아니, 내가 딴 데 한눈을 팔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을 따르겠다는데, 이런 나를 보고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는가?’라는 유혹입니다. 혹은 ‘이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들고, 내 신앙 하나 제대로 유지하기도 힘든데, 남들에게 관심 갖고 그들을 챙기라는 말, 내 코가 석 자인데.’라는 생각 또한 유혹입니다. 유혹은 다독이며 달랠 문제가 아니라, 단호하게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서울대교구 이명찬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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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별빛

등록일2014-10-26

조회수5,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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