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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성호경에 관한 이야기(2가지)

이번 주부터 새롭게 사순 특강을 시작해 주신 이성재 사도요한 신부님(대전가톨릭대학교)은, 하루에 몇 번 정도 성호경을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시작으로 삼시세끼 식사(전,후) 때에만 해도 12번은 기본으로 하게 되는 것이고, 고속도로휴게소의 식당에서 성호경하는 신자들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요지의 말씀을 시작으로, 다음 주까지 강의를 해 주실 것입니다.  

 

신부님의 특강과 시의적절한 글이 있어 공유하고자 합니다. 저의 블로그에 스크랲 해 놓았던 글들인데 하나는 책에서 발췌한 성호경의 의미에 관한 글이고, 하나는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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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성호의 의미

 

과거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문을 외지 않고, 성호를 긋는 것만으로도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손을 이마에 대고 먼저 가슴으로 내리는 것은 성부께서 아드님을 천국에서 지상으로 보내시어 사람이 되게 하셨음에 대한 믿음을 표시하는 것이며, 왼쪽 어깨에 손을 대는 것은 성자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음을 고백하는 것이며, 오른쪽 어깨로 이동하는 것은 성자께서 승천하시어 우리를 성화시킬 성령을 보내셨음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성호를 말없이 긋든 기도문을 외우면서 긋든 그것은 매일 해야 하는 일상적인 일 너머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며 하느님과 보이지 않는 영적인 부분에 더 많이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성호를 긋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하느님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기회가 된다.

   

하느님의 이름이 무한한 존재이심을 알고 있는(탈출3,14; 요한8,58 참조) 우리는 십자성호의 영적인 힘을 받기 위해 마음을 더욱 활짝 열수 있고, 성삼위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성호를 그을 때, 하느님의 신성한 본성 및 실체와 함께 기도하게 된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를 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더 가까이 오시어 축복해주신다고 말하고 있다(탈출20,24 참조).

   

따라서 성삼위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는 우리를 주님의 현존 속으로 데려가 그분의 힘을 얻게 함으로써 기도를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려 준다. 그러므로 십자성호는 기도의 시작과 끝에 긋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가까이 이끌어주고 그분과 함께 걷고 기도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신성한 행위이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무엇이든 예수님의 이름으로구하면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한14,13-14; 15,16; 16,26-27 참조), 이는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우리가 원하고 우리의 기도가 그분의 기도가 되도록 우리의 의지를 하느님의 의지와 일치시키라는 의미이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도의 요지이다. 성호를 그을 때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 가운데 하늘에 계신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부분을 바치게 된다.

   

아름다운 동작과 기도문으로 바치는 성호경은 하느님의 현존 속으로 들어가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 하느님의 뜻을 우리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을 선언하는 것이다. 상삼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면 주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마음속에 가장 중요하게 품고 계신 것을 구할 줄 알기 때문이다.

   

발췌: 알고 긋는 십자성호, 버트 게찌 지음, 박정애 옮김, 가톨릭출판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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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큰 신앙고백, 성호경

   

전삼용 요셉 신부(수원교구)

   

얼마 전 우연치 않게 한 신부님의 아버님을 뵙고 식사를 함께 하였습니다. 그 아버님은 성체 신심이 특별하신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그 아버님은 신앙이 그리 강한 편이 아니셨습니다. 아니 어쩌면 신을 부정하며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있었고 그렇게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하루는 일하시는 곳에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아버님은 그 화재를 직접적으로 입으셨고 3도 화상으로 죽은 것으로 판명이 되어 병원 영안실에 넣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영안실에 넣으려는 순간 일하는 사람들이 숨소리를 듣고 혹시 살아있는 것이 아니냐고 수군대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기억이 없으시다고 합니다.

   

깨어보니 병원 침대 위에 뉘여 있었습니다. 입도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코와 귀도 화재로 사라져버린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 상태였습니다. 그 병원이 수원에 있는 가톨릭 병원이어서 수녀님이 혹시 영성체 하고 싶으세요?”라고 물어 보셨고 아버님은 말씀을 하실 수가 없으셔서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입도 벌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성체를 영하시려고 하신 것일까요?

   

아버님은 그 때 죽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영성체를 하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잊고 사셨던 기도를 다시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데 주위에 사람들이 나타나더니 성모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모송을 바치면 주위의 사람들이 주님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들이 기도를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제대로 성호를 그었습니다. 그랬더니 기적처럼 방해하던 무리들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아버님은 성호를 긋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이때부터 깊게 인식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렇게 밤새 기도를 하시는데 온 병원에 불이 났다고 합니다. 그 분은 어떻게 걷고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고 하시며, 사람들을 깨워 피하라고 하였지만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옆 병실에 입원해 계신 모 주교님을 찾아갔는데 그 주교님은 일어나셨습니다.

불이 났다고 피하라는 그 아버님의 말에 하느님께서 무언가 일을 하시려는 모양이네.” 하시며 아버님께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불은 그 아버님께만 보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시간 동안 아버님은 기적을 체험하십니다. 화상이 다 벗겨져 새살이 돋아난 것뿐만 아니라 없어졌던 코와 귀까지도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그렇게 아침 미사에 당당히 내려가 성체를 영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그 주교님께서 다 목격하셨습니다. 그 아버님보다 뒤에서 있다가 더 적게 화상을 입으셨던 분들이 지금까지 다 불구자로 계신 것을 보면 아버님의 기적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아버님이 아침미사에서 성체를 영하고 돌아왔더니 온 병원이 난리가 났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환자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아버님께 와서 혹시 여기 누워있던 환자 못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누구도 하룻밤에 그렇게 온전해진 아버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고, 그분의 아버님, 즉 팔순이 훨씬 넘으신 할아버지께서는 그 일이 있어서 아들 얼굴이 더 잘생겨졌다고 농담까지 하셨습니다.

   

아들 신부는 우연히 아버지께 이런 기적이 있었던 병원에서 봉사를 하다가 지금도 실제로 이 사실을 기억하고 계신 수녀님과 이야기 할 수 있었고 그것이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 이후 바뀐 것은 아버님의 외모만이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그 전에 냉담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열심한 신앙인이 된 것입니다. 성체신심은 말할 것도 없고 성호경에 대한 특별한 신심이 생기셨습니다. 그 분은 성호경에 가톨릭의 모든 신비가 다 들어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성체를 아무 감흥 없이 일상적으로 받아 모시는 이유는 아무 감흥 없이 성호를 긋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믿고 계셨습니다.

   

그 이후로 아버님은 누구와 있건 간에 삼종기도와 식사 전후기도 할 때 성호를 크게 그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고 하느님을 배교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당에 나오더라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성호를 긋지 못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모른다고 배교하는 것이고 심하게는 하느님을 부끄러워하면서 성당에 나와서는 성체를 모시기 때문에 하느님을 모독하는 독성죄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아버님은 건설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초창기 규모가 작을 때였는데 100억이 넘는 입찰에 도전을 해 보셨습니다. 당대 대기업 건설 회사들이 수주를 따내기 위해 입찰을 넣은 상태라 현실적으로는 입찰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아버님은 입찰이 이루어지는 동안 계속 묵주기도를 바치셨고 점심때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성호를 긋고 삼종기도를 먼저 바치시고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다가오더니 서류를 좀 보여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서류를 주었는데 결과적으로 아버님의 회사가 그 일을 따내게 되었습니다.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방금 전에 서류를 달라고 하셨던 분이 중앙에 앉아계셨다고 합니다. 그 분은 누구도 그런 곳에서 성호를 긋고 식사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하며 그렇게 신앙이 있는 분이라면 반드시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하여 그 분께 일을 맡기기로 결정 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성호 긋는 것 덕분에 사업은 크게 번창하였고 전국 몇 위 안에 드는 건설회사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일에 본의 아니게 관여되면서 사업을 접고 빚더미에 앉아야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버님은 또 다시 절망에 빠져 자살을 결심하셨습니다. 산에 소주 한 병과 극약 한 봉지를 들고 올라가셨습니다. 우선 소주를 좀 마시고 약을 먹으려는 순간 밥이라고 생각하셨는지 자신도 모르게 성호를 그었다고 합니다. 그 때 문득 처자식도 있고 이런 신앙을 갖도록 기적을 일으켜주신 주님께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며 다시 산을 내려오셨습니다. 성호가 또다시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아버님은 사업이 번창하면서 소홀하게 되었던 가정의 소중함을 알게 해 주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사업을 실패하게 한 것임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버님은 당신의 대자가 된 전직 목사님 4분을 포함하여 지금도 한 해에 10명 이상을 전교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누구에게도 성당에 다니라고 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강요해서 되는 일이 아님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어디에 가든, 누구와 있든 항상 성호를 긋고 식사를 하면 사람들이 저절로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 묻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저의 출신 본당 선교 왕이 생각났습니다. 그 분은 옷가게를 하시는데 들어오는 손님마다 찬미 예수님!”하고 인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것뿐인데도 어떤 때는 일 년에 40분이나 선교를 하셨습니다. 다만 자신이 가톨릭교회의 신앙인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드러내는 것뿐인데 관심이 있었어도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좋은 연결 고리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을 부끄러워하면 마지막 날 아버지 앞에서 우리도 부끄럽게 여기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성호를 긋는 것이 사실은 작지만 큰 신앙고백이고 선교의 시작인 것입니다. 선교, 먼 곳만 쳐다보지 말고 바로 지금 있는 곳에서부터 실천해 나가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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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luciabba

등록일2015-03-14

조회수5,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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