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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교우 학자가 바라보는 이슬람의 변화(1)

* 퍼 온 글입니다(http://well.hani.co.kr/584625)

* 종교사적으로 읽어 볼 만한, 쉽게 쓴 글입니다. 

 

필자 주원준: 가톨릭 학생회를 거쳐 평신도 신학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근동학을 공부하고, 현재 그리스도교 원천 문헌 번역에 힘쓰는 <한님성서연구소>의 수석연구원이며 서강대 종교학과와 신학대학원에 출강한다. 히브리 성경과 고대 근동 문헌을 읽으며 살고 있다. <우리 인간의 종교들> 번역에 참여했고, <구약성경과 신들>, <우가릿어 문법>, <우가릿어 사전> 등을 냈다.

이메일 : biblicum@gmail.com 페이스북 : weiterweiterweg

블로그 : http://wonjun.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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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슬람 세계를 서술할 수 있을까

- 이슬람의 변화와 우리-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biblicum@icloud.com

   

   

*2015223일 격월간 공동선 원고

   

1. 들어가며

   

올해 세계는 샤를리 엡도 총격 사건(Charlie Hebdo shooting)으로 시작했다. 17일 오전 1130분경, 쿠아쉬 형제는 자동화기로 50여발을 쏘고, ‘알라 후 아크라신은 크시다'고 외쳤다. 경찰관 2명을 포함하여 11명이 사망했다. 그들이 알 카에다(AlQaeda) 예멘 지부 소속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19일 프랑스 경찰 특공대가 두 명을 사살했다. 사흘만에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세계가 들끓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당시 필자의 마음에는 이슬람 세계가 크게 변화하는 과정에 본격적으로 들어선 느낌이 왔다. 그리고 서너가지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마침 공동선에서 그 생각을 서술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린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밝힐 것이 있다. 필자는 이슬람 전공자가 아니다. 구약학과 고대근동학을 공부한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다. 지금의 이라크, 시리아, 이집트, 터키 등이 헬레니즘화 - 그리스도교화 - 이슬람화되기 이전의 문명과 언어를 공부했다. 이렇게 공부하는 지역이 겹치는인연으로, 나름대로 꾸준히 이 지역에 대해 읽고,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고, 이따금 토론에 참여하였다. 그래서 10년이 넘는 관찰자의 시선쯤으로 보아 주시면 좋겠다. 논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 두런두런 이야기하듯이 적어 보려고 한다. 당연히 반론과 토론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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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격을 받았던 날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 앞의 상황. AP/뉴시스

   

   

2. 도식과 눈치

   

샤를리 엡도 총격 사건 이후, 솔직히 말하면 국내의 논쟁은 재미가 없었다. 거칠게 표현해도 된다면, 좌파는 도식적이었고 우파는 눈과 의지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일부 좌파 논객은 식민지 담론에 머물러 있었다. ‘유럽은 제국주의, 이슬람은 피지배자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식민지를 경험한 민족으로서 이슬람의 울분에 공감하고, ‘윤봉길, 신채호, 김구 모두 무장론자였다는 식의 옹호론이 나왔다.

   

필자는 이런 비교가 정교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간단히 생각해 봐도, 윤봉길, 안중근 등을 쿠아쉬 형제와 비교할 수 없다. 첫째,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은 일본의 왕족이나 최고 권력자를 직접 겨누었다. 3류 풍자 잡지를 급습하고 만세를 외치지도, 도주하지도 않았다. 둘째, 쿠아쉬는 동양평화론등을 작성할 수준이 아니었다. 김구 등은 아시아의 미래를 위해 상당한 비젼과 철학을 제시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런 도식적 견해를 투사projection)라고 느꼈다. 투사는 실재를 왜곡하는 안일한 방법 가운데 하나다.

   

필자가 과문한지 몰라도, 우파 쪽에는 읽을 만한 글 자체가 없어 보였다. 가능한 많은 정보를 빨리 모아서 주판알을 튕기는 인상도 일부 받았다. 괜찮은 하드웨어를 갖춰놓고도 공격적으로 사용할 패기가 없는 기술자 같았다. 의지 없는 눈치. 미안하지만 그렇게 보였다.

   

   

3. 이슬람을 주어로 말하기

   

한국에서 읽은 글의 대부분은 이슬람을 주어로 말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샤를리 엡도를 주어로 문장을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테러리스트를 주어로 문장을 짓기도 쉽다. 대개 이런 문장이 나온다.

   

샤를리 엡도는 풍자가 지나쳤다.’

테러리스트의 폭력은 절대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두 문장을 이어 복문을 만들기도 어렵지 않다. 대개 논쟁은 아래의 두 입장으로 수렴될 수 있을 것이다.

   

샤를리 엡도의 풍자는 지나쳤지만, 테러리스트의 방법은 절대 허용될 수 없다.’

테러리스트의 폭력은 허용될 수 없지만, 샤를리 엡도의 풍자는 분명 지나친 것이었다.’

   

국내의 논쟁은 이 두 복문의 조건절과 주절의 주어가 누구냐에 따라 줄세우는 듯 했다. 그러나 필자에게 두 문장은 거의 동어반복이고 지루했다. 주어를 그리스도교로 해 봐도 술어는 어렵지 않다. 한국인으로 해 봐도 쉽다.

   

그런데 이슬람을 주어로 문장을 만들 수 있을까? 샤르리 엡도 총격 사건 앞에서 이슬람은 ... ...독자는 어떤 문장을 지으실 수 있으신가? 우리는 어떤 술어를 택해야 할까?

   

이슬람을 주어로 말한 글은 소설가 장정일이 유일한 것 같다. 그는 한겨레 신문 24일자 “‘이슬람근본주의관용의 타락한 사용법에 대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반가운 견해다.

   

결코 이슬람은 약자가 아니다. ... 이슬람은 서구를 향해 자신을 아이 취급하고 예외로 다루어 달라고 더는 징징거리지 말아야 한다. 이슬람이 진정 유서 깊은 역사와 지혜를 간직하고 있다면, 그들이 길러온 문화의 힘으로 풍자와 조롱에 맞서야 한다.

   

앞으로는 이슬람을 주어로 말해야 할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에 대한 독서와 토론이 늘지 않는다면, ‘도식파눈치파의 글만 늘어갈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는 이슬람 세계의 상황과 실체를 정확히 보고 우리의 눈을 갖춰야 할 것이다. 이것이 첫째 생각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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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luciabba

등록일2015-03-18

조회수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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