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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학자가 바라보는 이슬람의 변화(2)

4. 범이슬람 주의의 종말

   

이슬람 전문가인 이희수 교수는 다양한 인터뷰 등을 통해 이슬람 세계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범이슬람주의는 사라졌다. 무슬림들은 개별 국가와 부족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경쟁한다.’ 필자는 이 관찰에 찬성한다.

   

범이슬람주의는 없다. 전체 이슬람 세계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는 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알 카에다, 탈레반, ISIL, 보코 하람(Boko Haram) 등 과격파 원리주의 단체가 이슬람의 승리를 위해 투쟁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무슬림을 대표하기는 커녕, 이슬람 세계의 골칫덩이다.

   

필자의 눈을 끈 문장이 있었다. 올해 23, ISIL은 요르단 조종사 모아즈 알-카사스베(Moaz alKasaesbeh)를 화형하는 끔찍한 필름을 전세계에 보냈다.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는(Abdullah II) 즉시 보복했다. 그 때, 요르단군은 전투기에 실을 폭탄에 이런 구호를 썼다. “너희들은 이슬람이 아니다.”

   

그렇다. 범이슬람 주의는 없다. 무슬림이 무슬림을 상대로 전투를 벌인다. 서로 옳은 신앙(orthodox)를 지녔다고 주장한다. 이런 갈등은 시아와 순니를 넘나든다. 시리아 반군과 시아파 무슬림인 이란이 ISIL을 상대로 작전을 벌이고 있다. 이 세 당사자는 모두 무슬림들이다. ISIL을 무찌르는 작전에 가장 원리주의적인 사우디와 가장 세속화된 터키가 협조한다. 흥미롭게도 암암리에 미국과 이스라엘도 참여하고 있다. 각자의 생존을 향해 무한경쟁하는 가운데 비무슬림 국가와도 협력하고 교류하는 상황은 어쩌면 지구촌 시대에는 당연한 일이다.

 is.jpg *이슬람국가(IS) 지도자 알 바그다디. 유튜브 동영상 캡쳐

   

   

5. 무슬림들의 경쟁

   

사실 무슬림들의 경쟁은 거의 모든 곳에서 볼 수 있다. 이슬람의 음식 규정인 할랄(Halal)을 예로 들어 보자. 그 기원은 구약성경의 율법인데, 현재 유다인들은 코셰르(Kosher)라고 한다. 코셰르와 할랄의 기본적 개념은 동일하다. 거룩한 백성은 온전한 것만을 합당한 방식으로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기본 개념 뿐 아니라 내용도 엇비슷하다. 쇠고기를 생산하는 경우, 대개 이런 내용이 포함된다. 송아지부터 합당한 환경에서 적절히 길러야 하고, 너무 어린 것을 잡아서도 안되고, 죽일 때는 고통을 최소화해야 하며, 피를 온전히 빼고 고기만을 취하고, 신에게 바치는 의례를 행하고, 내장 등 어떤 곳에서도 기형이 발견되면 안되고, 가장 위생적으로 처리하고, 유통과정에서도 정의를 지켜야 한다는 점 등이다.

   

할랄은 종교 규정이기도 하지만, 각국의 큰 산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큰 무역 장벽으로 기능한다. 한국의 식품이 이슬람 세계에 진출하려면 반드시 할랄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이슬람 각국은 기후나 전통에 따라 조금씩 다른 할랄 규정을 갖고 있다. 이를 통합하여 국제 할랄 표준을 만들자는 기구가 있는데 The International Halal Integrity Alliance, 줄여서 IHI Alliance라고 한다. 만일 국제 할랄 표준이 정해지면, 그 경제적 효과는 막대하다. 이슬람 인구는 13억이나 되지 않는가.

   

현재 이슬람 각국은 자국의 전통과 산업에 유리하게 이 기준을 이끌려고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 등 비무슬림 국가들까지 외교전에 참여한다. 막대한 이익이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할랄 규정을 둘러싸고 정작 종교믿음은 부차적이 된 듯한 느낌이다. 이슬람 국가들의 무한 경쟁이다. 이 점이 나누고 싶은 둘째 생각이다.

   

   

6. 경전은 편집되었는가

   

이렇게 현대 세계에서 종교는 세속을 이끌기 보다 세속에 끌려다닌다. 세상의 변화를 선도하기 보다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 이 점에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은 공통적이다. 그런데 이슬람 신학은 아직 한참 뒤쳐진 듯 하다. 이런 현상은 큰 도전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선 경전만 놓고 보자.

   

유일신 종교에서 경전은 큰 권위를 지닌다. 유일한 신이 역사에서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 것을 계시revelation)라고 하는데, ‘드러내다reveal)는 의미다. 그런데 그 계시는 말을 통해 주어졌고 책에 쓰여있다. 그러므로 그 책은 거룩한 책, 성서聖書, Holy Scripture). 성서는 그 자체로 하느님의 말씀이므로, 한 글자 한 글자에 하느님의 숨결이 들어 있다. 누구라도 한 획도 손을 댈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성경(Bible)이나, 유다교의 토라(Torah), 이슬람의 쿠란(Quran)이나, 거룩한 책이요 절대적인 책이다.

   

하지만 현재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의 주류 신학은 성서가 인간 역사에서 수없이 편집된 사실을 인정한다. 20세기에 교황청에서 나온 성서해석에 대한 문헌들은 이런 편집 사실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런 긍정은 성서의 절대적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성서 본문에 제한되던 눈을 더 크게 키운 것이다. 성서 본문의 모든 글자에 하느님의 숨결이 붙박혀 있지만, 수천년에 걸친 성서 본문의 발생과 전승과 해석 단계에서 하느님께서 다양하고 풍부한 방법으로 비범하게 일하셨음을 동시에 보는 것이다. 더 큰 시각의 신학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신학과 상생한다.

   

성서가 편집되었다는 신학은 배타적 신학을 물리치는데 큰 효과를 발휘했다. 성서의 편집과 전승에 대한 다양한 가설과 추론이 가능해졌다. 성서의 일부 구절을 본래의 맥락에서 분리시키는 일도 가능하고, 새로운 맥락에서 성찰하고 해석하는 일도 가능하다. 이런 배경에서 도발적 질문도 이어졌다. 그리스도교의 시작은 예수일까 바오로일까. 유배 이전의 이스라엘인은 메시아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이런 질문들은 신학 수업 시간에 상상력과 토론을 자극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물론 그리스도교와 유다교 내부에도 근본주의가 존재한다. 그들은 성서의 절대 권위를 배타적으로 해석한다. 성서가 편집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개신교 일각에서 제기하는 축자영감설' 곧 성경 한 자 한 자에 하느님의 영이 농축되어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성경의 한 획도 손을 댈 수 없고, 모든 낱말과 구절은 현재의 그 자리에 그 맥락에서만 읽고 해석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전제에서는 다채로운 신학이 피어나기 힘들다. 철학과 문학은 물론이고 자연과학도 성서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는 신학이 자리잡는다.

   

현재 이슬람의 쿠란 연구는 대개 이런 경향을 벗어나지 못한다. 현재 이슬람권의 분위기에서, 쿠란이 편집되었다는 주장을 할 수는 없다. 쿠란의 모든 구절은 본래의 그 문맥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도발적 질문이나 본래의 문맥에서 벗어난 해석은 금지된다. 배타적 신학이 자리잡기 좋은 조건이다.

   

   

7. 이슬람 신학의 발전

   

그러나 필자는 이슬람 신학의 발전에 퍽 긍정적이다. 역사를 길게 봤을 때, 이슬람 문명은 새로운 신학을 펼칠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새로운 이슬람 신학 창출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고 있다. 그 이유를 몇 가지 들어 보겠다.

   

첫째는 국가별 자유 경쟁의 분위기이다. 이슬람 국가들은 더이상 이슬람이라는 큰 세계의 하위 시스템이 아니라, 국가별로 고유한 시스템을 구축하여 무한 경쟁하는 주체다. 이는 국가별로 종교적 권위의 형성으로 이어질 것이다. 국가나 언어와 민족에 따라 새로운 신학적 사고가 형성되기 좋은 조건인 것이다.

   

둘째는 테러리스트들이 명분에 시급히 대응할 필요다. 사실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주장은 정말 형편없다. 테러에 참여해서 목숨을 잃으면 내세에 70명의 부인이 생길 것이라는 둥, 모든 여성들에게 글자를 가르치지 못하게 한다는 둥, 중세적 칼리프 국가를 설립한다는 둥, 여성 전쟁 포로를 성적 노예로 삼아도 된다는 둥의 논리는 조악하고 저열하다. 그들은 세계 종교이자 인류의 문화적 자산인 이슬람의 정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이런 근본주의에 대응하는 신학적 노력은 이슬람 내부에서 이미 진행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국가와 부족에 따라 형편이 다르다. 전선을 맞대고 전쟁을 치르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조금 느긋하게 바라보는 쪽도 있다. 세속화된 지구촌 세계를 수용하여, 이슬람 세계의 개혁으로 연결시키려는 쪽이 있는가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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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luciabba

등록일2015-03-18

조회수4,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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