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길 것이 많은 이의 행보(行步)는?
사제 생활 열 두해 째를 살며, 공식적인 이사(?)만 13번…
그만큼 자주 짐을 꾸려야만 했습니다.
짐을 꾸릴 적마다 “다음을 위해 짐을 줄여야지!” 다짐하며 버려보지만
역시나 살다보니, 필요한 것들이 또 눈에 들어옵니다.
다시 구입에 구입을 거듭하며 그날의 다짐은 옛 이야기가 되어갑니다.
2014년 10월 22일. 또 이사를 했습니다.
세탁기, 냄비 세트, 전기밥솥, 숟가락까지… 이것뿐이겠습니까?
“아~ 이게 정말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하신 그 분의 명(命)에 부합되는 삶인가?”
짐을 풀며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며,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 (마르 6, 8)
“정말이요? 주님, 이게 가능한지요? 챙길 것이 이렇게나 많은데요?”
‘버린다 버린다’ 하면서 오히려 하나 둘 챙기며 살아갑니다. 언제가 다시
사용할 날이 올 것만 같은 보험과도 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또 챙깁니다. 없으면 괜히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 (시편 16, 2)
2004년 1월 사제가 되면서 정한 성구가 점점 더 무색해집니다.
당신만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 믿었는데…
이젠 당신 말고도 행복을 주는 것들이 하루하루 늘어만 갑니다.
그럴 때마다 듣게 되는 오늘 말씀은 저에게 다가오는 날 선 편책과도 같습니다.
“지킬 것이 많으면 그 인생은 버겁고 무거울 수밖에 없다.
챙겨야 할 것이 많으면 변명을 일삼고 술수를 부리게 되어 있다.
자리를 지키고, 가진 것을 지키려면 바른 소리를 하기가 힘들어진다.”
이것은 비단 소유물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닐 듯 싶습니다.
사람의 관계도 그렇고 내 상처와 자존심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왜 자꾸 인생이 버겁고 고민이 많아질까요?
이유는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요, 놓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주님의 명(命)이 가능한 이유를 묵상해봅니다.
더 챙길 것이 없을 때, 비로소 하느님의 뜻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변명이 사라질 때, 비로소 하느님의 소리를 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의지할 때, 비로소 내 인생의 주인이 하느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 신앙을 살면서도 왜 믿음이 안 깊어지냐?”고 물으십니다.
답은 이것입니다. 하느님 말고도 믿을 구석을 많이 쌓아두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일이 신앙인데, 하느님 말고 다른 믿을 구석이 많으니
어찌 그 믿음에 ‘간절함’이 있겠습니까? 그저 이 한 몸의 편리와 즐거움 다 누리고,
챙기려는 그 행보(行步)에 하느님의 말씀이 담겨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러니 큰일입니다. 이렇게 떠들고 있는 제가 실은 제일 큰 문제입니다.
인천교구
김성만 (Patrick)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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