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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교류)재의 수요일에 원신흥동 성당 신도님들께 보내는 편지

재의 수요일에 원신흥동 성당 신도님들께 보내는 편지

 

간밤에 고기를 곁들인 만찬을 즐기셨나요? 저는 보좌 신부님과 햄이 들어간 김밥 만찬을 즐겼답니다. 기사를 보니 코로나 19의 여파에도 브라질에서는 카니발 축제를 즐기기 위해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렸다고 하네요. 물론 지역 고유의 존중할 만한 축제이기에 가타부타 할 말의 여지는 없지만, 이 축제의 이름을 생각해 보면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합니다. 마치 예수님 없는 십자가라고 할까요?, carne(고기) vale(잘 있어라, 안녕)의 영어식 표기인 카니발(carnival)은 여러 가지 역사적인 과정을 거치며 지역 축제가 되었지만 분명한 것은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을 염두에 두고 시작된 것이라는 것이죠.

 

이제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사순시기를 맞아, 그전에 고기를 먹고 기운내서 지내보자는 의미도 있고, 이제 이 시기 동안 고기를 못 먹으니 그 전에 든든하게 먹어두자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다양한 의미가 있겠지만 확실한 사실 하나는 예수님의 수난과 이 축제는 이미 상관이 없어진지 오래라는 것이죠. 이곳에서 살다 온 친구의 표현에 의하면 이 축제는 정말 흥겹고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쾌락적인 축제이지 절대 그리스도교 문화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더군요. 그렇게 재의 수요일 일주일 전을 술과 춤과 고기의 축제로 즐겨서 기운 차린 그들이 과연 사순시기를 잘 보낼까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요맘때면 들려오는 카니발과 관련된 흥겨운 이야기들이 저에게는 매년 반복해서 저를 씁쓸하게 만드는 하나의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원신흥동 성당 신도님들은 어떻게 오늘 재의 수요일을 보내고 계시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당분간 전면 금지 된 공동전례생활로 인해 미사에 참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 현실, 사제인 제가 오히려 미사에 오지 말라고 해야 하는 이 현실이 매우 안타깝고 이상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바닥으로 내려가는 자 만이 그분을 만날 수 있다는 말처럼, 지금의 공허한 듯 한 시기가 오히려 영적갈증을 일으키며 일상생활 속에서 그분을 더 극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 희망해 봅니다.

 

이렇게 조용히 시작된 오늘이 사순시기의 첫날인 재의 수요일입니다. 사순시기에서 사순은 40일이라는 뜻으로, ‘하느님을 만나기 전에 거치는 정화의 기간을 뜻하는 성경의 상징적 숫자에요. 즉 성경에서 중대한 사건을 앞두고 그를 준비하는 기간을 뜻하죠.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시나이 사막에서 방랑 생활을 했었고,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 동안 단식을 지켰고, 엘리야는 호렙산에 갈 때 천사가 주는 음식만 먹으며 40일을 걸었으며, 예수님께서도 공생활 전 40일 동안 단식과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40일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만날 준비의 기간이라는 면에 영성적 중요성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주님을 만날 40일간의 긴 여행의 시작을 여러분들과 함께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작년 이맘 때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주님을 환호하며 호산나를 외치며 흔들어댔던 성지가지를 태운 재를 함께 머리에 얹으며, 이제 곧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를 외칠 우리의 변덕스런 두 마음과 입을 함께 반성하며, 성찰하고, 나눴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렇듯 부족하고 약한 우리들이 함께 모였으니, 그런 우리를 힘 있게 해 주실 주님을 만나러 가자고 오늘 함께 출발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비록 육신은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몸이기에 언제든 기도 안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매일 조용히 거행하는 미사의 시작에 저는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주님께서 각 가정과 일터와 생활 속에 있는 여러분들과 함께라고 빈 성당에서 외치며 말이죠. 그리고 저는 성당 벽을 넘어 마음으로 이곳에 모이는 여러분들의 영을 봅니다. 분명 주님께서도 그 마음을 보시며 영적으로 당신의 몸을 나누어 주셨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당신의 고통에 동참하려는 여러분들의 머리에 영적인 재를 뿌려주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한 마음으로 이 어려운 상황을 잘 견디며 각자의 생활 속에서 40일의 여행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남이 들으라는 듯 큰 소리를 내며 기도하는 나의 교만한 소리를, 남이 보는 앞에서만 주님을 찬미하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 단식하는 위선의 마음을, 내 잘난 지식과 선함과 아름다움, 내 힘과 재물, 내 명예와 권력과 영광의 마음을 찾아내어 불태우는 여행을 시작해 봅시다. 그 여행의 끝에 우리는 분명, 육신의 눈으로 보기엔 고통과 죽음의 십자가였지만, 곧 부활하실 영광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이제 오늘 첫걸음입니다. 힘을 내서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 봅시다. 주님 만나러..

-주임신부 이진욱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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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이진욱미카엘

등록일202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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