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담기
저는 선배 신부님들로부터 듣게 되는 따뜻한 조언 중에
살아있는 강론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종종 듣게 됩니다.
제가 체험한 하느님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겠죠.
그러나 실상은 매번 강론을 준비 할 때마다 자료집을 찾게 되고
남이 체험한 하느님을 전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수고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자신의 하느님을 가질 수 없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 때문이다.’라는
어느 교부의 말씀이 늘 머릿속을 맴돌기만 합니다.
그 수고가 부족하다는 것이겠죠. 어쩌면 우리에게 맡겨진
첫 번째 선교 여행의 장소는 우리 마음이 아닐까요?
‘그대는 사랑받고 있다. 참으로 사랑받고 있다.
무한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라는 확신이 내 마음 안에 자리할 때
비로소 그 확신이 말씀으로, 삶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파리들은 식초보다 꿀에 더 많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얼굴에 지옥의 음울함을 담고 있는 사람들보다 천국의 기쁨을 담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이끌 수 있다는 말씀이겠죠.
할 수만 있다면 천국의 기쁨이 가득 담긴 웃음으로 삶의 여정에 지친
영혼들에게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도록 마음을 여는 것.
그것이 전교의 시작이 아닐까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이라는 단어만 알 뿐이고 그 안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모르죠. 성체 성사의 의미 역시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은
성경을 읽은 이들과, 또 성체를 받아 모신 믿는 이들의 삶에서
드러나는 모습을 통해 성경을 이해하고 성체를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씀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아름다움은 결국 거울에 비춰진 내 모습이지 않을까 묵상해 봅니다.
“사실은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1코린 9, 16)
인천교구
송형훈 세례자 요한 신부
|